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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문화상

제 32회 금복문화상(2018년)
  • 작성일2022/05/18 16:41
  • 조회 13,393


박윤배(朴允培)
대구 / 1962년

문학부문

 


 대학시절 중앙문화상(중앙대), 외문문화상(한국외국어대), 개신문학상(충북대), 대학문학상(원광대) 등 대학생 문학상 공모의 시부문 장원으로 시창작의 기초를 다졌으며,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1993년 첫 시집『쑥의 비밀』을 발간했으며, 1996년 《시와 시학》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기반을 다졌다. 이어 시집『얼룩』, 『붉은 도마』, 『연애』, 『알약』 등을 발간하고, 올해 등당 30년을 맞으면서 여섯 번째 시집『오목눈이집증후군』을 발간하는 동안 정진을 거듭해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의식에 언어들이 입체적으로 포개지고, 그 이미지들이 다른 방향으로 전이되거나 변용되는 비구상회화를 방불케 하는 그의 근작 시에는 현실 너머의 세계가 연출되고 비애로 얼룩진 파토스의 무늬와 결들이 다채로운 빛깔로 번지며 확산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성보다 감성에 기운 듯한 서정시의 외양에 긴장감이 감도는 그의 시편들은 대상(세계)을 재현하는 차원과는 전혀 다르게 언어나 이미지의 전이와 변용, 반전과 비약으로 기존질서 너머의 ‘존재의집’들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개성이 두드르기도 한다. 1987년 경북대학교 부설 사대부속중학교 교사로 출발해 중등학교 미술교사와 교감으로 20여 년간 근무한 뒤 2007년 명예퇴직, 전업시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대구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대구예술가곡회 사무국장으로 활약해왔으며, 계간문학지《문장》편집에 10여 년간 참여, 현재 주간으로 문단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시창작원 ‘형상시학’ 대표와 문학동인 ‘볼륨’ 고문, 각종 시창작 지도강사 등으로 후진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면서 많은 제자들을 문단에 등단시켰고 각종 문학현상공모에도 입상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등 시 창작지도력을 과시한다.

 


이강일(李康一)
대구 / 1956년

음악부문

 


 한국의 대표적인 트럼펫연주가, 지휘자로 세계적 명성의 독일 쾰른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했으며, 브륄시립음악원의 강의교수를 지냈다. 1982년 KBS교향악단 수석으로 귀국한 이후 한국,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교향악, 실내악 협연, 독주회 등을 가졌고, 서울금관5중주를 창단해 관악음악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KBS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니, 코리안심포니, 광주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 충남도립교향악단, 경북도립교향악단 등과 협연했고, 1988년 명동성당에서 국내 최초로 파이프오르간과의 트럼펫독주회를 가졌다.

 KBS금관앙상블을 창단하고,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멤버로 활동하는 등 한국 관악음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1990년 동아음악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세계트럼펫협회가 선정한 초청 독주자로 미국 워싱턴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이어 일본,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에서 초청 독주회를 몇 차례 열었다. 1999년과 2000년 폴란드 키엘체국립오케스트라와 비에나압스키필모하모니, 2008년 옐레냐굴라필하모니 지휘를 했고, 2001년 폴란드의 DUX레코드 라벨로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트럼펫’ 음반을 출반했다.  초기 바로크 음악의 발굴 연주와 국제연주활동에 대한 공적으로 2002년 하르코프필하모니아협회로부터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국제관악제의 조직위원과 제주국제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했으며, 1991년부터 대구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적 수준의 연주력을 키운 계명심포닉밴드를 이끌어 폴란드, 프랑스, 대만, 중국 등에서도 공연했다. 2008년 재즈빅밴드 ‘볼케이노’를 창단, 10여 년간 재즈음악 팬들에게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연주를 선보였고, 2012년 지역 관악인들로 구성된 ‘코리아 윈드 필하모니’를 창단, 지휘자로 관악음악 발전에 이바지하는 한편 지역 관악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태웅(魯泰雄)
대구 / 1956년

미술부문


 대학 재학시절에 경상북도미술대전 동상(1980, 서양화부문 최고상), 대학원 시절에는 경상북도미술대전 특선(1981), 동상(1982, 서양화부문 최고상), 은상(1983)을 수상하고 초대작가로 위촉됐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82, 1984), 특선(1986), 입선(1986), 특선(1987)한 뒤 초대작가로 위촉됐다. 그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목우회 공모미술대전 심사위원, 금강미술대전 심사위원, 삼성현미술대전 심사위원, 한유회 공무미술대전 심사위원, 신라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대구시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경상북도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대한민국정수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경상북도미술위원회 위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경상북도문화예술진흥기금 심사위원,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대구문화재단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칠곡군 동명면 가천리에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2013년부터 전업화가로 활약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윤수(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전 영남대 교수)는 “한 화가가 20대의 나이에 자기의 양식을 확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긴 회화의 역사에서, 특히 자연주의적 회화를 그리는 화가의 경우 앞선 대가들의 수법이나 양식의 어딘가를 닮기 일쑤이고 이를 애써 피한다 해도 자칫하며 인습적인 사실주의 아니면 진부한 정서주의에 떨어지는 화가가 허다함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사물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아야 하고 그 범상치 않은 눈을 실현하는 솜씨나 기법도 그래야 함은 물론 남들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려는 집요한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독창성은 어느 의미에서 남과 다른 차별성의 양과 질의 문제라도 말해도 좋을 것이다. 노태웅은 우선 이런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일찍이 자기의 양식을 만들어간, 흔치 않은 화가의 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대구FC엔젤클럽


대구FC 엔젤클럽

특별상


 대구FC 엔젤클럽은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대구FC를 명문 축구단으로 발전시키려는 순수후원단체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 당시 현암건설 이호경 대표와 강병규 대구시 감사관이 대구FC 재정 조달방안으로 시민 동참 ‘릴레이후원사업’을 발의, 추진하게 됐다. 2015년 1월 이호경, 강병규, 배성혁 등 공동발기인들이게 조광래 대구FC 사장과 이도현 대구시 체육과장은 회원을 ‘엔젤’이라고 부르기 시작, 그해 2월에 진명전력 배장수 대표를 제1호 엔젤로 영입 이후 가입한 회원 12명은 4월 대구FC 홈 개막경기에 참석, 권영진 사장으로부터 격려와 함께 엔젤 상징 머플러를 받으면서 본경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회원이 50명으로 늘어났으며, 2016년 4월 대구FC 출정식과 개막전에 40여 명이 참석, 이호경 현암건설 대표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7월 25일 회원 200여명이 참석해 엔젤클럽 창립총회를 개최해 임원을 선출했으며, 축구전용구장 개장 때까지 회원 1천4명을 영업 목표로 정했다. 대구FC 운영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후원금은 전액 대구FC 계좌로 입금, 출범 4년 만에 2부리그에서 1부 클래식 리그로 승격되는데 이바지했다. 2016년 11월 회원 300여 명이 비전선포식을 갖고 회원 영입 목표 1천4명을 1년 앞당겨 2017년 말까지(11월 달성)로 설정했으며, 지역 기업 CEO들이 매년 고액(1천만 원 이상)의 후원금을 지원, 이들에겐  ‘다이아몬드 엔젤’이란 호칭을 부여해 현재 12명이 동참하고 있다. 또한 관중 확보를 위해 대학, 기관, 단체들과 상호협약을 추진해 2월에 대구보건대학교를 시작으로 지역 대학들과 대구상공회의소, 농협, 대한적십자사 대구지회, 오페라하우스, 국제로타리 등 기관단체들과 협약하고, 중증장애인들에게도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엔젤클럽 매거진’(City of ANGEL)을 계간지로 발행해 배포하며, 현재 회원은 1천3백여명(회비는 매년 다이아몬드 엔젤 1천만원 이상, 엔젤 1백만 원 이상, 부부엔젤 각 1백만원, 가족엔젤 1백만 원, 엔시오엔젤 1만 원)이다.